나의 이야기

가슴 속에 분노가 가득한데 이 분노를 다스릴 수 있을까? 답변

吾喪我 2014. 11. 5. 17:27

제가 이병철이 죽기 전 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달았습니다.

분노에 대한 것을 빼먹어서 지금 답변을 답니다. 

제가 다혈질에다가 잘 욱하는 편이라 저에게 필요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링크 걸어놓겠습니다. 

녹색 글씨로 된 부분을 클릭해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독과 외로움에 대하여 답변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답변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답변 (하편) 

우리는 왜 자기 인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할까? 답변

자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답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 필요가 있는가? 답변

과학이 발달하면 세상이 달라질까요? 답변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아프고 힘들고 고생스러워야 하나? 답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좌절의 순간, 어디에 출구가 있나요? 답변 

악인의 길과 선인의 길은 정해져있나? 답변

극단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답변

악한 사람이 부귀 영화를 누리는 사례는 대체 뭔가? 답변

우리나라는 종교가 번창한데 왜 이렇게 사회문제는 많나? 답변

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답변

선한 부와 악한 부가 따로 있다면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上篇

재테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변

 

 

사람이 왜 분노를 할까요?

 

1. 자존심이 상해서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분노하는 경우는 존심이 상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심, 자존감, 자만심, 자신감 다 비슷한 것 같은데 조금씩 다 다른 것 같습니다.

여기서 구별은 생략하겠습니다. 

 

사람에게 2가지 인식이 다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하였고 성경에서는 한 영혼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존귀한 존재라는 인식이 하나입니다. 

또 하나는 내가 우주에서도 띠끌만한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입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무력하고 나의 내일 일도 알 수 없는 하찮은 미물에 불과합니다.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 소유와 지위로 자신의 존귀와 하찮음을 판단합니다.  

존귀한 존재, 하찮은 존재는 자신의 소유, 지위와 관계없는 것이며 인간 누구나에 해당되는 보편적인 것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 인식이 따로따로가 아니고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고 2가지 인식을 동시에 같이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존귀한 존재 인식 없는 하찮은 존재 인식은 낮은 자존감, 비참함, 열등감에 빠지게 합니다.

하찮은 존재 인식 없는 존귀한 존재 인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간사해서 하루에 수십번도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존귀한 존재와 하찮은 존재라는 동전의 양면도 하루에 몇번 씩 뒤집히고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존귀한 존재란 인식은 내가 낮은 자존감에 빠져 열등감, 절망에 헤맬때 도움이 됩니다. 

반면 내가 띠끌만한 존재라는 인식은 지금 잘 나가고 있어 비행기 타고 있는 나를 겸손하게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겸손이 중요합니다. 겸손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타인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해란 말이 under stand, 다른 사람밑에 있어야 이해가 가능합니다.)

한참 잘 나가서 안하무인이 되기 쉬운 자에게 내가 쉽게 이 꼭대기에서 무너질 수 있는 하찮은 존재란 인식이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보통 자존감을 가져야 할때 비참함에 빠지고 겸손해야 할때 교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습니다.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스스로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저는 자존심을 앞세워 분노하는 경우는 존귀한 존재와 하찮은 존재란 동전 양면의 인식이 없어서 생기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강한 사람이 자존심이 세야 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여리고 열등감을 가진 사람, 낮은 자존감에 쌓인 사람이 자존심이 센 경우가 많습니다. 

자존심의 근저에는 내가 존귀한 존재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습니다. 

오히려 존귀한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 사람은 여유가 있기에 자존심을 앞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습니다. 

내가 소유와 관계없이 존귀한 존재라는 인식이 없는 낮은 자존감은 자존심을 앞세웁니다.  

 

또 내가 하찮은 존재라는 인식도 중요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것을 알고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이 나의 자존심에 상처 줄 건덕지도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야 이 실력없는 돌팔이야" 라고 하면 자존심에 상처 입어 화내고 싸우기 쉽습니다.

그런데 "아니 내가 실력없는 돌팔이인거 어떻게 알았지.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고 하잖은 존재인 걸 

당연하듯이 애기하면 상대가 오히려 당황합니다.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이 나는 무시받으면 안되고 하찮은 존재도 아니고 내가 존귀해야 하고 성공해야한다는 

고정관념, 강박관념으로 발생합니다. 

내가 존귀한 존재, 하찮은 존재라는 동전의 양면 인식이 있을 때 자존심에 상처 안받고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 되는 일이 없어 화가 난다, 화가 나 

 

사람들이 화가 나는 경우는 되는 일이 없을 때입니다. 

사업하다 실패하고, 아이 대학 시험 봐서 떨어지고, 

자동차 타고 가다 사고나고, 

이럴 때 화가 납니다. 

 

분노가 생길 때 객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끈질기게 따라올 때 극복할 방법은 있는 걸까요? 답변 글에서

불안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객관화를 제시하였습니다.

고통이 있을 때 고통을 벗어나는 불교적인 사고도 제 개인적으로 객관화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이 분노하게 되면 내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가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분노라는 감옥에 갖혀 스스로 탈옥하기 힘들 정도가 됩니다.

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열쇠는 객관화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노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잘못을 했다면 나의 잘못이기에 분노할 이유가 없고 나의 잘못이 아니면 내가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안에 대한 글을 쓸 때 나온 내용인데

예전에 스트레스대처법(학습)이라고 쓴 글에서 이런 내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비합리적인 사고는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완벽주의 생각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적 사고

선악의 이분법적 사고가 일으킵니다.

 

비합리적 사고는 왜곡된 생각을 낳습니다.

왜곡된 생각은 한두번 일어나는 일을 계속 일어날 거라는 과잉일반화,

마음대로 결론을 지어 최악의 극단적 상황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파괴적 결론을 내려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불안감을 일으킵니다.

율법적 사고이분법적 사고로 죄책감을 갖고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이분법적 사고로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배척합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을 할 때 불안 뿐 아니라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는 객관적이고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입니다.

 

분노 중 큰 것은 원한이 담긴 분노일 것입니다. 

나에게 사기치고 도망가고 나의 전 재산을 날리게 하고 길바닥에 나앉게 만든 인간에 분노는 내가 어찌하지 못합니다. 

이 분노는 나에게 감옥이 되어 증오심으로 나를 파괴합니다. 매일 술로 잠들게 하고 화병, 심장병 들게 합니다. 

이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는 객관화와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과거의 일은 내가 술마시고 후회하고 분노한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미래는 내가 어찌할 수 없기에 고민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분노가 나의 육체와 영혼을 파괴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게 쉽지 않지만 과거와 미래에 메이지 않는 객관화와 합리적인 사고가 이 분노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분노란 감옥에서 벗어날 때 새출발이 가능합니다. 

 

 

3. 일상다반사, 그냥 습관이야

 

현대인이 화를 내고 짜증 내는 것은 습관인 경우가 많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고 각박해져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안녕 프란체스카 이후로 드라마를 시청하지 않았는데 드라마에도 분노하는 모습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습관적으로 화내는 것 해결 방법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4.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4번의 분노는 바람직한 분노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 분노하지만 꼭 해야할 분노가 있습니다.

 

그것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나보다 힘이 없는 자를 향한 분노는 필요없습니다. 

하지만 나보다 힘이 센 자에게 대한 분노는 필요합니다. 

 

권위적인 사회일수록 분노가 금기사항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노가 무능하고 부도덕한 자기들을 향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독재 정권, 반민주주의에 대해 분노했지만, 

우리는 더이상 ***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중산층붕괴,  불황을 야기한 신자유주의에 대해 분노하지도 욕하지도 않습니다. 

소수 특권층을 위해 다수를 노예로 만드는 것에 대해 분노하지 않습니다. 

행동할 용기는 없어도 부조리를 인식하고 분노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당시 기득권층인 바리새인을 향해 독사의 자식(현대한국어해석 개*끼)이라고 욕하고 분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