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 필요가 있는가? 답변

吾喪我 2012. 8. 19. 06:46

창가에서 나무 가지가 흔들리면 바람이 분 줄 압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현상세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인 바람이 작용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는 넓게 보면 현상세계를 움직이는 원리나 이성 등을 말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이데아세계, 과학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좁게 보면 실제 존재한다고 보는 본질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힌두교에서 보는 윤회의 세계, 기독교에 애기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계로 압축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좁은 의미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는지 안하는지는 과학적으로 검증, 재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논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말싸움만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구약 예언의 300가지 이상이 예수로 성취된 것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하니 우연히 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생각을 초월한 기가 막히고 존경스러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눈에 보이지 않기에 하나님을 본다면 죽기에 검증이 안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뒷모습만 봐서 안죽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있느냐 없는냐로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 따라 삶은 차이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현상세계를 움직이는 원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필연이 있고 원인과 결과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 필연을 인정함으로 삶의 자세에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의미가 없어 인생을 허무하다고 보고 막 사는 사람에게 장점이 부각됩니다.

 

내가 태어난 것이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기에 의미있게 살려고 한다고 합니다.

사업이 망해서 힘들 때 거기에 긍정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율법을 지키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고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자 합니다.

실제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을 따라 거룩하고 희생적이고 아름다움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윤리적이고 사랑이 많아야 할 같은데

더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인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강조할때의 단점은 강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에게 부각됩니다.

가뜩이나 율법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사서 고생하는데 필연과 원리가 있다고 하면

이 필연과 원리가 율법이 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이렇게 살지 못하면 자신을 정죄합니다.

또 그렇게 살지 않는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심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강조하고 행위를 강요하는 것은 그 사람을 파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단점은 현대철학자들이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는 세계는 중요한 세계, 덜 중요한 세계라는 위계적인 질서를

만듭니다.

이런 위계 질서는 아버지와 그 외 가족들이라는 가부장적 질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질서

지도자와 국민 등의 위계적, 권위적 질서를 만듭니다.

 

위계적 질서에서 자율성, 창조성, 다원성은 무시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원리를 숭상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다원성을 무시하고

자기네 질서에 들어오지 않는 자들을 배척하고 정죄합니다.

 

예수님은 권위적, 배타적이지 않고 사랑이 많았는데

그 이후에 예수님을 좇는 자들이 배타적이고 권위적이고 사랑이 없는 것은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