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인플레 공포가 있을 때 금리인하 후 금리인상

吾喪我 2022. 11. 28. 12:31

기준금리(빨강) 실업률(파랑) cpi(파랑)


실업률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자 82년 12월에 마지막 금리인하를 하고 금리인하가 멈추었습니다.
그러자 83년 4월에 cpi가 3.5%에서 4%로 약간 오르자 당시는 인플레에 대한 공포가 남아있어 바로 금리인상을 가져감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 3%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하고 15년간의 인플레 시대가 끝나서인지 이후 물가는 70년대에 비해서는 안정적이었습니다.
86년도는 실업률이 상승할 때는 아닌데 실업률이 정체되고 안 내려오자 금리인하를 했다가 실업률이 하락하고 물가가 1.1%에서 1.3%로 약간 오르자 인플레 공포 때문인지 바로 금리인상을 가져갔습니다.

 


90,91년 경기침체가 있고 실업률이 고점을 찍은 후 금리인하가 멈추었고 인플레시대가 지나서인지 물가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준은 이때 인플레공포가 남아있어서인지 인플레를 선제적으로 예방하려고 94년 2월부터 1년간 3%의 큰 폭으로 금리인상을 하였습니다.
그 덕인지 물가는 장기간 안정되어서 90년대 주가지수가 크게 오를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기준금리(빨강) 실업률(파랑) cpi(파랑) 하이일드스프레드(하늘)


98년에는 실업률이 오르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하이일드 스프레드가 치솟자 금리인하를 하여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이후 금리인하때문인지 물가가 올랐는데 98년 11월 물가가 2%위로 올라오자 바로 금리인상을 가져갔는데 인상폭이 1.75%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금리인상 폭이 적어서 cpi가 3%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3% 위에서 머물게되었습니다.
그리고 금리인상 폭이 적어서 주식 시장에 버블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때는 금리인상 시기는 적정했는데 금리인상 폭을 베이비스텝이 아닌 94년처럼 빅스텝으로 가져가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인플레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 것 같습니다.

 


2003년에 금리인하 때문인지 cpi가 3%위로 오르기도 했지만 아직 실업률이 상승중이라 계속 금리인하를 하였고 이때는 90년대의 물가안정 때문에 인플레 공포는 사라진 때였습니다.
실업률이 고점을 찍자 금리인하도 멈추었는데 cpi가 2%를 넘은 후 3개월이 지나서 금리인상을 가져가서 이때 금리인상 시점이 늦고 인상 속도도 느려서 부동산 시장에 버블을 생기게 했다는 평을 듣습니다.

 


11년 2월 cpi가 2%를 넘고 4월에 3%를 넘었고 실업률이 고점을 찍고 하락중인데도 금리인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유럽은 2차례 금리인상을 했고 한국도 5차례 금리인상을 했습니다.
이때 연준은 물가 보다는 경기 안좋은 것을 더 심각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당시 실업률이 고공행진중이었고 회사채 시장도 불안하여 하이일드 스프레드가 9%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물가는 후순위였습니다.
물가는 유럽재정위기가 터지면서 저절로 해결이 되었고 연준은 회사채 시장이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후 테이퍼링을 하고 15년 12월이 되어서야 금리인상을 가져갔습니다.

요즘 연준이 인플레로 고생을 해서 앞으로 경기침체로 금리인하 한후에 경기가 회복되고 물가가 오르면 2010년대처럼 물가가 3순위가 아니고 80년대, 90년대초반 처럼 물가가 1순위가 되어서 바로 금리인상을 가져가며 대처를 할 것 같습니다.